독서 - 감성 디자인

11 Mar 2018

애런 월터(Aarron Walter)의 『감성 디자인』은 마치 공산품처럼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UX/UI 디자인을 벗어나, 웹사이트나 어플리케이션이 사용자에게 하나의 인격체처럼 다가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와 원본 활자를 예로 들어 감성디자인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컴퓨터는 저 뒤쪽으로 물러나고 소통의 표면에 인간적인 개성이 드러나게 된다(p.42.)”고 말한다.

구텐베르크가 자신이 디자인한 원본 활자를 이용해서 수백 권의 성경을 인쇄했을 때 그 서체의 디자인은 대서인들이 필체를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그는 신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기계를 만들었지만 힘들게 노력한 끝에 결국 보여진 것은 바로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3장 “개성”. pp.44-45.

책에서는 사용자 페르소나와 함께 “디자인 페르소나”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예전에 몇 가지 아이템을 기반으로 사업을 구상했을 때, 항상 페르소나를 설정해보는 작업은 진행했지만, 서비스의 페르소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물론 서비스가 고객에게 제공할 이미지에 대해서는 고민했다. 하지만 이 고민이 우리의 디자인 페르소나를 정의하는 과정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

디자인 페르소나를 접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가을, 국내 배달 앱의 대표 브랜드 중 하나인 “배달의 민족”을 서비스하고 있는 우아한형제들, 장인성 이사의 특강을 들으며 우아한형제들이 자사 서비스의 대상 고객 페르소나를 정의하고, 그에 해당하는 사용자에게 접근한 방식에 대해 들었다. 그때도 이 접근 방식이 페르소나를 연구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연결됐다고 생각했을 뿐, “디자인 페르소나”와 연결해 생각하지 못했다. 이에 대한 기반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디자인 페르소나의 예시로 저자인 애런 월터가 UX CDO로 근무했던 “메일침프(MailChimp)”의 디자인 페르소나를 보여준다. 저자의 사이트에서 메일침프의 디자인 페르소나 예시와 디자인 페르소나 템플릿을 다운로드할 수 있으니 한 번씩 봐두기를 추천한다.

나는 무언가를 적용할 때 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며, 또 그 반대인 사람은 몇 퍼센트나 차지할지 지나치게 고민하는 편이다. 대척점에 서 있는 두 개성을 모두 안고 가려다 보니 무언가를 적용하는 게 쉽지 않은데, 저자는 이러한 ‘부딪힘’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개성끼리는 부딪칠 수 있거든요. 사업적인 면에서는 그것도 긍정적인 일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개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그저 여러분과 맞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3장 “개성”. p.64.

4장 “감성적 교감”에서는 “포토조조(Photojojo)”의 사이트에 적용된 페이지 폴드(fold) 인터랙션이 흥미로웠다. 제품의 상세 페이지 옆에 “DO NOT PULL”이라고 적힌 레버를 당기면 상단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손 모양 그래픽이 불쑥 나와 제품의 상세 설명 부분으로 페이지를 이동시킨다. 이 외에도 포토조조 재미있는 다양한 기능과 “우푸(Wufoo)”의 직원이 직접 쓴 손편지를 활용하는 고객 응대 방법은 꽤 인상적이었다. 이런 종류의 디자인은 아이디어를 내기도 어렵지만 그 아이디어를 세련되게 구현해내는 게 참 어렵다. 아니, “세련”을 빼고 그저 구현하려고 해도, 기술적인 장벽뿐 아니라 팀 내부에서 해당 아이디어를 적용할 당위성을 합의해내는 것부터 높은 장벽이다. 일단은 재미로, 예상치 못한 효과를 기대하며 해볼 수도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절대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 편이라 더 어렵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기대심리, 벨벳 로프, 점화작용, 슬롯머신 등 감성적 교감 방법에 대한 내용은 앞으로 서비스를 준비할 때, 검토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다룬 사례들을 살펴보면 그 핵심에는 언제나 훌륭한 콘텐츠가 있습니다. 똑똑한 콘텐츠 전달법은 새롭고 설득력 있는 콘텐츠 접근법을 제시하거나 고객의 관심을 유지함으로써 콘텐츠를 보완합니다. 감성적으로 설득하는 방법으로 전달되는 훌륭한 콘텐츠는 무관심을 타파하는 마법의 돌 크립토나이트(Kryptonite)와 같습니다. -5장 “본능과의 한판 대결”, p.102.

6장 “용서”에서는 2006년 7월, 플리커(Flickr)서비스가 3시간 동안 저장과 관련한 오류를 겪은 이야기가 나온다. 이때 서비스 중지 이유를 설명하는 페이지에 플리커의 로고와 닮은 두 개의 동그라미를 넣고, 이 동그라미에 색을 칠해서 사진을 찍어뒀다가 서비스가 정상 복구된 후 업로드해서 최고의 작품을 가리는 이벤트를 진행했다고 한다. 우승자에게는 일 년간 프로 계정을 제공했고, 이는 서비스 장애에 대한 스트레스를 만족감으로 전환한 사례다.

우리는 단지 페이지를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경험을 디자인합니다. 미술공예운동을 이끌었던 사람들처럼 우리도 인간적인 감성을 보존하고 우리의 작업 안에서 스스로를 보여주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중요한 필수 요소입니다. -7장 “위험과 보상”. pp.129-130.

이 책의 마지막 장인 7장 “위험과 보상”에서 이러한 감성 디자인을 적용하는 방법에 따르는 위험과 보상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작게 시작하는 법,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법, 점진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모두 설명해주고 있어서 책을 읽는 이들은 현재 자신이 어떤 상황에 부닥쳤는지 숙고한 후 적절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결론에서 디자인 행위가 단순히 페이지를 디자인하는 것이 아닌 “인간적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디자인 행위에 있어 “인간적 감성을 보존하고, 이를 보여주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애플이라는 거대한 기업이 감성 디자인의 성공 사례로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오늘날, 이 책은 다소 진부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이 서비스를 준비하거나 운영하는 상황이라면, 곁에 두고 종종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막상 문제를 맞닥뜨려 해결책이 필요할 때, “감성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고 의사결정에 이를 반영하는 건 쉽지 않다. 당연히 이 책에서 제안하는 방법은 만능열쇠가 아니다. 하지만 자물쇠에 맞는 열쇠를 찾아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반드시 시도해볼 만한 좋은 도구라고 생각한다.

길을 잘못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든지 방향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이 아이디어들을 이용한 간단한 상호작용 패턴으로 작게 시작하세요. 그리고 사용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세요. 여러분의 예상이 적중한다면 큰 것을 얻을 것입니다. -4장 “감성적 교감”, p.88.


그외 메모

여러분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감성을 선사한다면 그들은 여러분의 웬만한 결점은 용성할 것이며, 여러분이 이끄는 대로 따라오는 동시에 여러분을 칭송할 것입니다. -1장 “감성디자인”, p.20.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여러분은 이 기기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We think you’re going to love it”라는 말로 제품 시연을 마칠 때, 그는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들의 디자인 정신이 보여주듯 애플은 인간 심리와 감성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2장 “사람을 위한 디자인”, p.37.

사용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모든 요소를 강조하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게 됩니다. 마치 얼룩말 무리에 숨은 얼룩말처럼 말이죠. -2장 “사람을 위한 디자인”, p.33.

감성 디자인은 상황이 여러분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에도 고객의 신뢰를 유지하는 보험과 같습니다. -6장 “용서”. p.113.